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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mbling

[북한말] 가리마와 가니마

editor752 2019. 12. 4. 11:53

남북의 어형(語形)이 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단어인 <가르마>, <가리마>에 관하여 알아본다.

<가르마>와 <가리마>

남의 대표적인 대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 <가르마>는 아래와 같이 등재되어 있다.

가르마 [명]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랐을 때 생기는 금.
가르마를 타다. 두 갈래로 땋아 늘인 머리 복판에 흰 가르마가 선명하게 그어졌고….≪홍성원, 육이오≫

북의 대표적인 대사전인 《조선말대사전》(1992)에 <가르마>는 아래와 같이 비문화어, 즉 방언으로 등재되어 있다.

가르마 [명사,방언]
가리마 (경남)

한편 《표준국어대사전》에 <가리마>는 아래와 같이 비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다.

가리마2 「명사」
→ 가르마.

《조선말대사전》에 <가리마>는 아래와 같이 문화어로 등재되어 있다.

가리마1 [명사]
머리칼을 량쪽으로 갈라붙일 때 생기는 골. ~를 가르다. ~가 곱게 드러난 머리. 밀림속에 ~처럼 곧추 뻗어나간 오솔길. ~가 곱게 넘어간 머리.

즉,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가를 때 생기는 금'을 이르는 남북의 규범 어형에서 차이가 있다. 즉 아래 표와 같다.

 
가르마 O X
가리마 X O

우선 <가르마>는 경기도를 위시하여 <강원>, <경남>, <경북>, <전북>, <충남>에서 쓰이며 <가르매> 어형까지 고려하며 <전남>, <경남>까지 포함되어 거의 이남 전역에서 쓰이는 어형으로 볼 수 있다. <가리마>는 <함북>[부령]에서 쓰이는 방언형이고 <가리매>를 고려하며 <함북>[성진, 학성, 길주, 명천, 경원, 온성, 회령, 무산], <함남> 지역이 추가된다. 즉 함경도 방언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북에서 이와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방언형으로 <골>이 있는데 <평남>, <평북>, <황해>[곡산, 송화, 수안, 신계]에서 쓰인다. 그러나 어원상 <가리마>와 <골>은 구별이 되므로 북에서 동의어로 쓰인다고 하더라고 <가르마>와 비교할 대상은 되지 않는다.

남북에서 규범 어형을 결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에서는 <표준어 규정 제17항에 따른다. 즉 약간의 발음 차이로 쓰이는 두 형태 또는 그 이상의 형태들에서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형태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기에 ‘가리마’에 비해 널리 쓰이는 ‘가르마’를 표준어로 삼은 것이다. 직관상 <가르마>가 동사 <가르다>에서 왔을 것이라는 강력한 짐작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 자료가 없다. 그래서 남에서는 동사 <가르다>를 언급하지 않고, <표준어 규정>에서 경쟁하는 어형 <가르마>, <가리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규범어를 선정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에서 <가리마>를 문화어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주지하다시피 문화어의 지역적 기준은 <평양어>인데 함경도 방언형이르 보이는 <가리마>를 왜 규범어로 선정했을까? 《조선말대사전》의 <가리다>에 대한 풀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가리다2 [동사]
① 땔나무나 곡식단같은것을 차곡차곡 쌓아 더미를 짓다. 례: 낟가리를 ~. 장작을 ~. 소년이 마차에 실어온 나무를 가리고있었다.(장편소설 《청년전위》 2)
② 헝클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추리다. 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시 가리고 트레머리에 삔을 새로 꽂았다.

위와 같이 <가리다>에 머리를 정돈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뜻풀이하고 있다. 즉 북에서는 <가리마>가 <가리다>에서 왔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조선말규범집>의 형태주의 표기 원칙에 따라 이 어형이 규범어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가리마>와 <가니마>

머리카락을 갈라 생기는 금을 이르는 <가르마(남)/가리마(북)>과 관련하여 흥미를 끄는 단어가 동형어 <가리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리마>를 아래와 같이 등재하였다.

가리마1 「명사」
예전에, 부녀자들이 예복을 갖추어 입을 때 큰머리 위에 덮어쓰던 검은 헝겊. 비단 천의 가운데를 접어 두 겹으로 만들고 그 속에 종이나 솜을 넣은 것으로, 앞머리의 가르마 부근에 대고 뒷머리 부분에서 매어 어깨나 등에 드리운다.

《조선말대사전》에도 이와 동일한 의미의 <가리마>가 등재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가니마>라는 어형도 등재되었다는 점이다. 《조선말대사전》(2006)에서 등재된 어형으로 《조선말대사전》(2017)에서도 여전히 등재되어 있다.

가리마2 [명]
《민속》 리조때에, 부녀자가 례장을 할 때 큰머리우에 덮어쓰는 치레거리. 검거나 붉은 비단천으로 가운데를 접어 두겹으로 만들어 그속에 종이나 솜을 넣은것으로서 앞머리의 가리마부근에 대고 뒤머리부분에서 매여 어깨나 등에 드리운다.

가니마 [명]
리조때에, 녀자춤군이나 녀의원이 쓰는 이마가리개. 검은색비단이나 보라색비단 2자 2치를 가운데를 접어 두겹으로 하고 두꺼운 종이를 그안에 대여 만들었다.

《조선말대사전》의 <가리마>와 <가니마>의 풀이만으로 보면, <가리마>는 일반 부녀자들이 큰머리 위에 사용하는 일종의 장신구이며, <가니마>는 특정 계층의 여자들이 사용하던 가리개가 되겠다. 이때 <큰머리>라 함은 예식 때 여자의 어여머리 위에 얹던 가발이다.

위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큰머리> 삽화이다. 위 <가리마> 사진을 유심히 보면 우리가 흔히 알던 가채를 얹은 머리 위에 올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남북의 <가리마>는 동일한 대상을 이르던 말이 확인되므로 관건은 사용하던 계층에 따라 어형이 <가리마>와 <가니마>로 분화되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된다. <가니마>와 관련해서 찾을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자료는 <문화콘텐츠닷컴>의 <여성용/가니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내용을 원용하면 아래와 같다.

가니마(加尼磨)는 가리아, 가닐마라고도 하며 차액(遮額)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차액이 훈(訓)을 따르는데 비해 가(加)·니(尼)·마(磨)는 그 음을 따서 이마를 가린다는 뜻으로 여겨서, 의미를 옮겨 차액으로 기록된 듯 하다. <임하필기> 에 보면 우리나라 부인은 현금(玄錦), 또는 자금(紫錦), 전폭(全幅), 이척(二尺 ), 이촌(二寸)을 접어 두 겹으로 하고, 그 안에 두꺼운 종이를 받쳐 대어 이를 썼는데 이마에서 정수를 덮은 다음 뒤에 드리워 어깨를 덮는다고 하였다. 광해군 중기 이후 족두리를 만들어 쓰게 되면서 족두리가 한 때 호상하다 마침내 국속을 이뤄 없어지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상층에서 차액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당대 여성의 폐면의 관습과는 무관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쓰개로서, 고려의 몽수에서 기원이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조선조에 들어와서 몽수를 쓴 채로 앞을 걷어 올려 얼굴을 드러내던 것이 일반 부녀에게 금지되자 특수직의 여성, 즉 의녀나 기녀에게만 가능해지게 되어 점차 간소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기녀는 흑갈의 가리마를 이고 의녀는 흑단의 가리마를 착용한다. 그 형상은 책갑과 같고 가체 위에 인다.”고 했던 가리마는 차액이 아니라, 기녀와 의녀 사이에 유행했던 쓰개의 일종이었으며, 그나마 족두리 사용이 일반화 되자 조선후기에는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즉 《조선말대사전》의 <가니마> 항목에 원어 정보가 충실하지 않은 탓에 음상이 비슷한 <가리마>와 관련을 맺어 규범어형인 <가리마>가 있음에도 <가니마>를 등재한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오징어>를 <오적어(烏賊魚)>로 한자 음을 빌려 쓴 것과 같이 <가니마>도 한자의 음을 빌려 적은 어형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가니마>의 규범어 처리 역시 <오적어>의 예를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차액(遮額)>의 동의어인 <가리마>와 <가르마>의 어원과 분화에 관해서는 세종계획 결과물인 <국어 어휘의 역사>의 내용을 참고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가르마’가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현풍곽씨언간>의 ‘리매’인데 이것은 옛 여인이 성장(盛裝)을 갖출 때 머리에 쓰는 쓰개의 일종이다. 현대국어의 ‘가르마’와는 그 뜻이 다르다. 18세기 문헌에는 ‘가림자’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가리-+-ㅁ+자’로 분석할 수 있다. ‘가리다’는 ‘분(分)’, ‘파(派)’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현대국어의 ‘갈리다’(‘가르다’의 피동형)에 해당한다. ‘가리다’에 명사 파생 접미사 ‘-ㅁ’이 결합하여 ‘가림’이 된다. 이 어형은 16세기에 이미 보인다. “岐 가림 기 <1576신유합,下,54a>”. ‘자’의 의미와 어원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19세기에 보이는 ‘가리마’는 현대국어의 ‘가르마’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풍곽씨언간>의 ‘리매’와 같이 18세기 문헌에 쓰인 ‘가리마’는 조선시대의 부녀자들이 예복을 갖추어 입을 때 큰 머리 위에 덮어쓰던 검은 헝겊으로 만든 쓰개를 이르는 말이었다. “각 궁방 무수리와 의녀와 침 션비와 각 영 읍 녀기들은 밋머리 우희 가리마로  녀  등급 구별 을 뵈오되<1788가체신,10a>”. 여기에 연유되어 현대어 ‘가르마’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보이는 ‘가름자’는 ‘가르-+-ㅁ+자’로 분석할 수 있다. ‘가르다’는 ‘분(分)’, ‘파(派)’의 의미를 갖는다. ‘가림자’가 ‘가름자’로 변화한 것은 ‘가리다’가 ‘갈리다’로 변화하면서 어근을 상실했기 때문에 ‘가르다’를 어근으로 유추한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름마’는 ‘가리마’와 ‘가름자’에서 유추하여 생긴 것으로 보인다. 현대국어 사전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는 ‘가르마’ 형태는 검색되지 않는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에도 ‘가림자’는 표제어로 올라 있으나 ‘가르마’는 올라 있지 않다. ‘가리마’는 ‘가림자’와 같은 말로 처리하고 있다. 현대국어의 ‘가르마’는 동사 ‘가르다[分]’에서 의미적 유연성을 얻어 ‘가리마’를 ‘가르마’로 고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현대국어 사전에 등재되어야 할 말은 오히려 ‘가름자, 가림자, 가리마’ 등이 더 타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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