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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뭘까?

nate.com의 홈페이지를 열자 이런 광고가 전면에 뜬다. 유니세프에서 낸 ‘보트피플’이라고 불리는 해양 난민을 후원해 달라는 광고였다. 아이를 구조하고 있는 남성의 이미지 오른편에 문안을 읽다가 “이거 뭔가?”하는 물음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2019년,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난민의 42%는 여성과 어린아이입니다.

난민을 성과 나이로 세분한 것도 이상한데 수치도 괴상하다. 우선 첫 번째 조건인 여성의 범주에 벗어난 대상은 남성이다. 두 번째 몇 살까지를 ‘어린아이’로 볼 수 있는지 합의된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취학 이전이라고 상정한다면 7~8세 이전의 아동에 해당 될 것이다. 이 두 조건에서 벗어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면서 취학 이전인 인간’은 58%라는 소리가 된다. 수치를 제시했다면 그 수치가 큼을 강조하고 하는 것일 텐데 58%에 해당하는 이들보다 ‘여성과 어린아이’가 보다 시급하게 구해져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58%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42%나 되니까? 아니면 여성과 어린아이는 구해져야 마땅하니까?
일반적으로 사회적 배려의 대상이라고 언급되는 범주는 어린아이, 고연령자, 장애인, 임신부이다. 이들에 대해 배려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성립욀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공감이 일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약한 사회 구성원을 보호하는 차원인 것이다.
위 광고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기존의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 생물학적 ‘여성’을 슬쩍 집어넣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여성’이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대상인가? 본질적으로 ‘성(sex)’이 사회적 배려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을 해야 한다.
분명 사회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권리를 덜 얻고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 이면에는 성역할과 이에 따른 사회적 편견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이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극복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나도 공정한 경쟁과 능력에 따른 보상 등 자본주의 자유 사회의 기본 원리가 정상적으로 적용되기 위해 이 문제에 대해서 여성주의자들과 함께 어깨를 결고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물학적 성’을 배려의 범주로 삼는 것은 좀 위험하다. 기본적으로 여성이 자력에 의한 구제를 실현할 능력이 없는 대상도 아닐뿐더러 여성주의에서의 여성은 특혜의 대상으로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이 아닌 성으로 인한 차별과 편견이 없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기 위해 사회 인식과 제도, 문화 면에서의 개신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 방식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여성주의에서의 ‘여성’과 그러한 편견이 사회, 물리척 폭력이 되어 자력에 의한 구제를 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이들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는 사회적 배려의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구제되고 보호되어야 할 이들이다. 곧 우리 사회의 책임이고 모럴의 지표인 것이다. 이 구분 없이 ‘여성’이라는 조건만으로 약자에 대한 구제와 사회 구조의 개신을 도모한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뿐이다. 유혈 혁명을 바라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머지 절반이며 기득권자인 남성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꿀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Manners makth Man 이라는 말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 혹은 권리로 받아들이는 것부터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사회에서 남녀란 그저 소비 기호가 다른 인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ABO식 혈액형이나 화성, 금성을 바라고 ‘달라’를 외치기 전에 말이다.
광고 자제로 돌아와서 남성인 청소년, 남성인 고령자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남성 고령자와 여성이 빠져 있으면 여성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말일까? 물론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문안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러한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를 일으킬 우려가 큰 문안이라는 점은 깨닫고 문안이 나가기 전에 수정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현대인의 메말라가는 선의를 쥐어짜내길 바라라는 광고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문안을 넣는다는 것은 목적한 바가 무엇인지 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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